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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해방

yesungcho 2022. 5. 21. 16:48

두 문제를 푸는 과제 중 한 문제가 풀리지 않아 결국 다 풀지 못한 채 제출하였다.

 

처음으로, 미처 완성하지 못한 과제물을 제출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강박증 환자마냥 밥 먹으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그 문제를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마음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기 위해,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결국 내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굴레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고등학교와 재수시절, 대학 4년에 걸쳐 나를 압박해오던 모든 말들, '너는 이 문제 하나도 풀지 못하면 너는 인생에서 어떠한 문제도 풀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이것도 못 풀면서 어떻게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 수 있겠니', 이 모든 말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이 되었던 그 기쁨은, 무언가 새로운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준 것 같았다. 뭐 그래봤자 자주 있는 과제 중 1개 못 제출한거 아니냐면서 웃어 넘기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게는 과제가 아닌, 나를 짓누르던, 나라는 사람의 가치와 자존감, 나아가 존재 이유까지 넘보던 압박에서 점차 벗어나는 그 시작을 끊은 기념적인 순간이었다. 그 정도로 내게 공부와 학업, 일은 압박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라는 사람은 그동안 그렇게 압박을 갖고 사는 사람치고는 결과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왜냐면 불안하고 압박감을 갖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갖는다는 것이 반드시 정비례 관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나마 좋은 아웃풋이 나왔고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는, 진정 내가 하는 일을 재밌어하고 즐겼을 때, 그 순간이 왔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는 것은 어느 정도 내 인생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물론, 이 잠깐의 과제에서는 해방을 느꼈지만, 다시 또 다른 과제를 걸고 내면의 누군가는 내게 또 압박을 넣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주어진 이 상황을 감사해하며, 즐기며,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진정 그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되고, 나아가 의미 있는 공부를 세상에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먼저 들이밀지만, 우리 인생은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도 같이 바라보아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치워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지 않은 이 1문제, 딱히 내 연구 주제와도 관련이 없고 그저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듣는 이 한 문제가 내 인생에 어떠한 큰 바람을 불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한 문제에서 잠시나마, 쫓기던 내 걸음걸이를 조금은 쉬게하는 그런 분기점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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